숨은 보석을 찾는 여정
GPS를 믿지 마라 - 첫 번째 시행착오
"청담동 124-5번지요? 아 거기 맞는데 건물이 안 보이네요."
택시기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달 금요일 밤 8시 동료들과의 약속을 위해 향했던 그 곳에서 벌어진 첫 번째 해프닝이었다.
휴대폰 지도를 들여다봐도 뭔가 이상했다. 분명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그럴싸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찾던 곳에는 간판이 없었다.
"아 뒤쪽으로 들어가셔야 해요."
전화를 걸어서야 들은 안내였다.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니 조용한 주차장이 나타났고 그제서야 작은 입구가 눈에 띄었다. 마치 비밀기지를 찾은 기분이었다.
오후 7시 드디어 문이 열리다
대부분의 유흥업소가 6시부터 문을 여는 것과 달리 이곳은 7시에 시작한다. 왜 굳이 한 시간 늦게 시작하는지 궁금했는데 들어가보니 이해가 됐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조명 하나 음악 볼륨 심지어 화장실 수건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곳에서 경험했던 '아직 준비 중입니다' 같은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사장님이 매일 5시부터 2시간 동안 직접 체크하세요."
담당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왜 7시에 시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1시간의 여유가 이런 완성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8개 룸의 숨겨진 이야기들
"여기 원래 뭐였어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룸 하나하나가 묘하게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룸카페였고 그 다음엔 라이브바였어요. 지금 일프로가 된 건 최근이에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벽면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모서리는 아마 카페 시절의 흔적일 것이고 천장의 조명 배치는 라이브바 때의 무대를 고려한 것 같았다.
각 룸마다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시간의 층이 쌓여서 만들어진 독특함이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룸은 5개 중 하나였다. 소파 배치가 ㄷ자 형태로 되어 있어서 4명이 앉기에 딱 좋았다. 대화하기에도 게임하기에도 최적의 구조였다.
헤리티지만의 가치 발견
200만원의 가치를 묻다
17년산 위스키 2병에 200만원.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비싸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과 비교해보니 30-40만원 정도 더 비쌌다.
"왜 이렇게 비싸죠?"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담당 매니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기 한 번 와보시면 알아요. 다른 곳하고 비교가 안 돼요."
처음엔 영업 멘트인 줄 알았다. 하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
일단 사람이 달랐다. 스태프 한 명당 룸 1-2개만 담당하니까 서비스 퀄리티가 완전히 달랐다. 다른 곳에서는 계속 바뀌는 스태프 때문에 매번 설명해야 했는데 여기서는 한 명이 끝까지 케어해줬다.
분위기도 달랐다. 8개 룸뿐이니까 소음도 없고 복잡하지도 않았다. 마치 친구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20명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보통 1부는 11시까지인데 연장하실래요?"
11시쯤 매니저가 물어봤다.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 있고 싶었지만 연장료가 부담됐다.
"2부는 어떻게 되죠?"
"2부는 12시부터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오히려 더 재밌을 거예요."
호기심이 생겨서 2부까지 있어보기로 했다.
자정이 넘어가자 정말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1부 때는 약간 격식 있고 조심스러웠다면 2부는 훨씬 자유로워졌다.
다른 손님들도 바뀌었다. 1부는 대부분 예약 고객들이었는데 2부는 단골들이 많았다. 스태프들과 손님들이 서로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장님도 2부에는 직접 나와서 테이블을 돌았다. 40대 중반쯤 보이는 여성분이었는데 각 테이블마다 안부를 물으며 직접 챙겨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깊어지는 체험의 층
새벽 2시 진짜 이야기의 시작
"여기 직원이 몇 명이나 되죠?"
"20명에서 25명 정도요. 8개 룸에 이 정도면 많은 편이죠."
계산해보니 룸 하나당 2-3명꼴이었다. 다른 곳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서비스가 달랐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술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고 안주도 적절한 타이밍에 나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개인 맞춤 서비스였다. 내가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신다는 걸 한 번 말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물어보지도 않고 스트레이트로 준비해줬다. 동료가 얼음을 많이 넣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금세 파악해서 미리 준비해뒀다.
새벽 4시의 마무리
"다음 주에 또 오고 싶은데 예약 가능할까요?"
나가기 전에 물어봤다.
"다음 주는... 금요일 토요일은 이미 다 찼고요. 평일도 확인해봐야겠어요."
놀랐다. 평일도 예약이 꽉 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보통 얼마나 미리 예약해야 해요?"
"2-3주 전에는 해주셔야 해요. 단골 손님들은 한 달 전에도 예약하세요."
그제서야 이해됐다. 왜 간판도 없는 곳이 항상 만석인지 왜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데도 사람들이 오는지.
품질이 입소문을 만들고 입소문이 예약을 만드는 구조였다.
보석 같은 디테일들
예약이 안 되는 이유
나올 때 발견한 또 하나의 디테일은 주차 서비스였다.
"차량 세차 서비스 받으실래요? 3시간 이상 이용하신 고객은 무료예요."
정말로 우리 차가 깨끗해져 있었다. 단순히 주차만 해주는 게 아니라 세차까지 해준다는 게 놀라웠다.
대리운전도 특별했다. 일반 앱에서 부르는 게 아니라 이 업소 전용 기사들이 있었다. "고객 정보는 절대 외부 유출 안 됩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청담동이라는 동네 특성상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고객들이 많을 텐데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게 대단했다.

뒷마당 주차장의 배려
결국 3주를 기다려서 다시 갔다. 이번에는 미리 예약을 하고.
두 번째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님 또 오셨네요! 지난번에 17년산 드셨죠?"
입구에서부터 반겨줬다.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번에는 다른 룸으로 안내받았는데 역시 분위기가 달랐다. 같은 업소인데도 룸마다 다른 매력이 있었다.
두 번째라서 그런지 더 편하게 대해줬다. 사장님도 직접 인사를 와주셨고 스태프들도 더 친근하게 대화를 나눴다.
"단골이 되려면 몇 번 와야 하죠?"
"음 3-4번 정도 오시면 단골 대우 해드려요."
이미 2번 왔으니 반절은 온 셈이었다.
진정한 헤리티지 경험
3주 후의 재방문기
"여기가 청담동에서 유일한 일프로라면서요?"
두 번째 방문 때 확인해본 정보였다.
"네 맞아요. 몇 년 전까지는 몇 군데 더 있었는데 지금은 저희가 유일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이곳의 가치가 더 명확해졌다. 독점이라는 건 그 자체로 가치였다.
임대료 비싸기로 유명한 청담동에서 10년 넘게 버티면서 여러 업종을 거쳐 지금의 일프로로 정착한 것. 그리고 경쟁 업소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것.
이 모든 게 단순한 운이 아니라 진짜 실력이라는 걸 두 번째 방문에서 확신하게 됐다.
세 번째 전화
두 번째 방문은 거의 새벽까지 이어졌다.
새벽 4시쯤 되니 정말 조용해졌다. 다른 룸들도 하나둘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스태프들도 좀 더 편해진 모습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매일 이 시간까지 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
"익숙해졌어요. 오히려 새벽 시간이 더 좋아요. 진짜 대화가 이루어지거든요."
그 말에 공감했다. 새벽이 되니 어떤 가식도 없는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
장사하는 이야기 인생 이야기 청담동 변화 이야기까지. 이런 대화는 다른 곳에서는 나눠본 적이 없었다.
청담동 유일무이한 체험기
청담동 유일함의 무게
"이번 주 토요일 자리 있을까요?"
이제는 자연스럽게 전화를 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토요일은 힘들고... 일요일 어떠세요?"
일요일에 유흥업소를 간다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가보니 일요일만의 특별함이 있었다.
일요일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주말 같지 않은 여유로움이 있었고 손님들도 더 편안해 보였다.
"일요일 단골들은 정말 찐 단골들이에요."
매니저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됐다. 일요일 밤에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은 정말로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왜 사람들이 2-3주를 기다리는가
세 번을 가보니 확실해졌다.
헤리티지는 단순한 유흥업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을 파는 곳이었다.
간판 없는 입구에서 시작해서 새벽 세차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스토리였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충분히 200만원의 가치가 있었다.
물론 비싸다. 다른 곳보다 30-40% 비싸다. 하지만 받는 경험은 두 배 이상이었다.
예약이 어렵다. 2-3주씩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찾기 어렵다. GPS로도 헤맨다. 하지만 찾았을 때의 뿌듯함이 있었다.
이 모든 불편함이 오히려 특별함을 만들어냈다.
네 번째 예약 그리고 에필로그
이 글을 쓰면서 벌써 네 번째 예약을 잡았다.
이번에는 한 달 미리 예약했다. 이제는 시스템을 안다.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지만 추천하면 내 예약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
이게 바로 헤리티지의 딜레마다. 좋은 건 나누고 싶지만 나누면 내가 못 간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도 계속 갈 것 같다는 거다.
청담동 124-5번지 뒷마당.
간판 없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하면서.
